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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고릴라 옷을 입은 소녀와 안전마진

by Blueorbit 2024. 5. 23.

'고릴라 옷을 입은 소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심리 실험은 특정 요소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큰 그림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농구공을 서로 주고받는 두 팀이 나오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한 팀에서 몇 번의 패스가 오갔는지를 세어보라고 요청한다. 팀원들이 서로를 향해 농구공 세례를 퍼붓는 동안 고릴라 옷을 입은 소녀가 코트로 깡충깡충 뛰어들어와 멈춰 선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자기 가슴을 두드리다가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 우스꽝스러운 출현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기 팀에서 오고 간 패스의 숫자를 세는 데 너무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smithsonianmag.com/science-nature/but-did-you-see-the-gorilla-the-problem-with-inattentional-blindness-17339778/

 

관심 종목으로 가치평가를 해서 적정 가격을 구했을 때 허탈한 경우가 있다. 현재 주가와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열심히 재무제표를 살펴보고 값을 구했는데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오다니... 나의 가치평가 방법이 종목에 적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해당 기업이 현재 고평가 되어서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면 나는 다른 방법을 적용해본다던지, 아니면 할인율을 조절해 본다. 기업의 성격에 따라 그에 맞는 가치평가 방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의 낙관적인 상황을 이유로 제시하며 할인율에 손을 대는 것은 안전마진에 대해 타협을 하는 것 같아 찝찝한 기분이 든다. 너무 정량적 분석에 매몰되어 있지 않나 반성하면서 내러티브에 무게추를 조금 더 얹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벤저민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확한 공식과 매우 부정확한 가정이 결합하면 사실상 우리가 바라는 어떤 가격이라도 산출해 내거나 정당화시킬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수학적이고 정교하고 난해할수록 이로부터 이끌어낼 우리의 결론은 더욱 불확실하고 투기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이 문제에 대한 벤저민 그레이엄의 해법은 계량적 요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취득할 자산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자격 요건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에서 그는 "매수 가격이 유형자산의 가치를 넘지 않는 대상으로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 두면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있어서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그 근거이다.

 

성장주의 경우 특히 이 문제(할인율을 낮춰서 적정가격을 높게 평가하려는 시도)는 심각해집니다. 장기적으로 성장을 기대하는 회사는 초과수익의 폭과 지속기간을 길게 잡기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할인율의 변화는 따른 가치 변화폭이 커집니다. 장기 고성장을 기대하는 주식은 할인율을 조금만 낮춰도 가치가 급등합니다. 유동성이 늘어나는 구간, 저금리 구간에서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었다는 이유로 할인율을 낮춰서 성장주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고는 합니다.
거인의 어깨 2. 홍진채


'거인의 어깨2'의 저자 홍진채 대표는 할인율을 낮춰서 가격을 정당화하는 건 요구수익률을 낮추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할인율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간, 즉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거나 금리가 올라가는 시기에 가치가 크게 하락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위험을 떠안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관심 기업의 가치평가 결과 적정가가 너무 낮게 나왔을 때 이 가격을 어떻게든 올리려고 합리화하지 말고, 해당 방식이 기업과 궁합이 맞는 방식인지 따져보거나, 수익력이 확실히 훌륭한 기업이라면 훌륭한 가격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가격인지 그래서 장기적으로 들고 갈지를 고민해 보고 매수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전마진'을 희생하려는 유혹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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