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 분위기는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작년 말만 해도 올해 봄에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들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강한 지표들로 금리인하가 언제쯤 일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현재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버블이 터진 후유증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버블이 완전히 터진 건지, 아니면 터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아는 것이겠지요. 이번 글에서는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박경철 저. 리더스북)'에서 버블이 터지는 과정을 모래성이 무너지는 데 빗대어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식시장과 모래성
덴마크 출신 물리학자 페르 파크는 "셀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하나의 조직은 조직을 통제하는 한 특정한 요소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자기 조직화를 주장했는데, 주식시장을 다음과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널빤지에 모래를 한 알씩 떨어뜨리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한 알의 모래가 널빤지에 떨어지고 다음 알맹이도 그럴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널빤지에는 모래가 일정 면적을 중심으로 깔리게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조금씩 모래가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가 모래가 점점 쌓이면 원뿔 모양의 모래성을 이루고, 그 모래성은 언젠가는 아슬아슬한 형태의 첨탑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모래를 한 알 더 떨어뜨리면 모래가 경사면을 따라 굴러 떨어지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모래알 하나가 결국 모래성을 일거에 붕괴시킬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무너진 모래성은 모두 바닥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쪽의 일부분은 무너져 내리지만 중간 부분 이하는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 즉 바탕은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또 계속 모래알을 쌓으면 모래는 다시 탑을 만들 것이고 또 무너질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모래성은 바닥이 점점 넓고 높이는 점점 높아지는 거대한 탑을 쌓을 것이지만, 그렇게 장기적으로 탑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중반부가 무너져내리는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바크가 자기 조직화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든 모래성은 사실은 주식시장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된 모래의 성격을 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모래는 시장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이지요. 기관 투자가, 개인 투자자, 과부와 고아, 데이트레이더, 내재가치 투자자 등 다양한 투자자와 경기, 금리, 환율, 실적 등의 변수들이 각각 하나의 모래알입니다. 이때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러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니라, 어느 순간 작용하는 누적된 역학관계의 붕괴일 뿐입니다. 따라서 특정 요소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모래는 개별로서는 전혀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래성을 구성하는 어떤 인력도 만들지 못합니다. 모래성의 모래알들은 서로 같은 힘으로 상호작용하지만 사실은 각자가 별개이며 서로를 붙드는 힘은 결국 전체가 인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주식시장에서 특정 원인만이 주가를 부양하거나(이를테면 적립식 펀드 열풍) 하락시키지는 않으며(이를테면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시장은 항상 동일한 사이클로 반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멘텀 투자자와 내재가치 투자자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모래성의 높이는 높아집니다. 이 부분을 확대해석하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시장 투자자를 모멘텀 투자자와 내재가치 투자자로 크게, 그리고 간단하게 분류할 경우 내재가치 투자자는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싸면 주식을 사고 비싸면 팔아버리지만, 모멘텀 투자자는 주가가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팝니다. 이 둘의 형태는 어떤 시기에는 서로 동행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주가가 저점일 때, 내재가치보다 주가가 싸면 이때는 내재가치 투자자가 모래성의 대부분을 구성할 것입니다. 모래성의 바닥은 주로 내재가치 투자자들로 구성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 주가가 오르면서 모멘텀 투자자가 가세하기 시작하여도, 이들의 동행은 모래성이 중턱에 이를 때까지 지속됩니다. 모래성이 중간 정도 쌓아 올려질 때 이들의 비중은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거기서 더 모래가 쌓이면 내재가치 투자자들은 주가가 비싸다고 판단하여 주식을 팔아버리고 이탈합니다. 하지만 오르는 주가는 모멘텀 투자자들을 더욱 끌어들이고 주가는 계속 상승하게 됩니다. 결국 중턱 이후부터 내재가치 투자자들의 비율이 감소하고 최종적으로 모래성이 뾰쪽한 첨탑을 만들면 모멘텀 투자자들만 존재하게 됩니다. 균형이 무너진 것이지요.
모래성의 붕괴
이제 남은 것은 무너져내리는 것뿐입니다. 모래성이 무너져버리면 다시 내재가치 투자자들이 진입하여 또 균형을 이루고 탑을 쌓아 올립니다. 즉 내재가치 투자자들은 큰 수익의 기회를 놓치는 대신 무너진 모래에 희생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모멘텀 투자자들은 쉽게 수익을 올리지만 언젠가는 무너져 내립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조직화된 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붕괴를 하고 균형을 이루면 가장 안정된 구조를 가진다는 말이 됩니다. 이때 어느 쪽이 훌륭하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각자의 선택과 통찰과 안목에 달려 있을 뿐이지요. 결국 현자는 모래성이 첨탑을 이루고 있는지, 혹은 이제 몇 알의 모래가 더해지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인지를 한발 멀리서 지켜보고 그 시점에 중단하는 사람일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그런 안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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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는 그 이유를 주가는 4차원적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2차원적 동물이 개미는 벽을 오르면서도 심지어 사람의 다리를 타고 오르면서도 그것을 평면으로 인식합니다. 마찬가지로 3차원적 인식구조를 가진 우리는 그것이 벽인지 바닥인지는 구별할 수 있지만, 다중지성과 다중요소로 결합된 고도의 상징과 기호적 세계인 주식시장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시공간을 뛰어넘는 특출 난 안목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첨탑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투자자 본인에게 달린 문제일 것입니다. 자신이 모멘텀 투자자라면 정상을 정복하기보다는 적당한 지점에서 하산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고, 만약 내재가치 투자자라면 산을 오르기보다는 차라리 등산로 초입에 자리 잡은 사찰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선택은 투자자 자신의 문제입니다.
부채의 전이와 관계의 왜곡
다시 말하지만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은 모래성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모래알이 떨어질 때는 창의적 인간들의 아이디어가 산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차차 그것을 알아본 인간들이 자금을 인출해서 그곳으로 옮기면서 산업이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모래성은 절반 정도의 높이를 이루게 됩니다. 그때쯤이면 처음 산업을 창조한 사람들과 초기에 가담한 사람들이 서서히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자본을 회수하는 것이지요. 이때부터 쌓인 모래성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고 모래성은 점점 높이를 더해갑니다. 각종 매스컴에서도 주식시장이 활황이라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상황이지요. 평소에 투자에는 관심이 없던 주변 사람들도 주식투자에 뛰어들게 됩니다. 마지막 절정에 이르면 처음에 투자한 사람들은 경쟁을 인식하고 자본을 회수하거나 남아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습니다. 각종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영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Buy the dip과 각종 레버리지 투자가 난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너지는 모래성은 위쪽의 절반이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경쟁구도에 뛰어드는 자들은 불나방입니다. 그들은 너도나도 화려한 미래에 도취되어 대출을 일으킨다. 뒤늦게 뛰어든 자본가들은 차입을 통해 신규 진출 러시를 이루고, 증시에서는 저축에서 꺼낸 자금, 저축할 자금, 신용차입을 통해 조성한 자금까지 동원하여 주식을 사들입니다. 이런 구조는 '부채의 전이'라는 차원에서 위기를 만들게 됩니다.
첨탑을 완성한 모래성의 상단 2분의 1은 뒤늦게 뛰어든 잉여인간들이 구축한 셈이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모래성의 붕괴로 입을 손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일어날 관계의 왜곡입니다. 창의적 인간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안목 있는 직관적 인간들이 초기 투자를 결행하면 이때 초기 자본 형태는 현금입니다. 창의적 인간들의 호주머니 돈과 직관적 인간들의 잉여자금이 투자의 초기 자본을 만드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점차 시장에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기술, 산업, 변화로 인정받고 주목받기 시작하면 그다음에 밀려오는 돈도 지분을 형성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은행이 아닌 다른 투자자들이 제공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투자자(주주)들의 부채에 해당될 것입니다. 기업은 10 배수, 20 배수, 나중에는 50 배수, 100 배수에 해당하는 투자금을 받고 종국에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증자를 거듭하며 성장 에너지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기업의 초기에는 증권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그것이 곧 증권시장의 역할이지만), 이 구조는 자본의 구조에서는 무서운 왜곡입니다. 즉, 초기 자본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에 비해 수십 혹은 수백 배에 이르는 자본차익을 거두지만, 그들이 자본차익을 거두는 만큼 뒤에 출자되는 자금들은 모두 기업이 짊어져야 할 부채를 대신해서 감당하는 희생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조정에서 도산하는 회사의 주주들은 모두 파산하지만 최초의 자본 조달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기업의 미래를 알고 경쟁을 인식하며 미래가 암담할 것임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경쟁 격화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흥분하면 자신의 지분을 시장에 매도하고 수익을 챙깁니다. 물론 시장에는 여전히 흥분에 들뜬 매수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인간들과 직관적 인간들은 대규모 자금을 획득한 후 시장에서 빠지고, 나머지 투자자들은 시체가 되어 그들의 피로 강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모래성이 붕괴될 때의 비극입니다. 인간은 0.1%의 창의적인 인간과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0.9%의 안목 있는 인간, 그리고 그것을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모두의 눈에 보일 때에야 볼 수 있는 잉여인간,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뉜다고 시골의사는 설명합니다. 창의적인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온 돌파구는 안목 있는 인간, 즉 직관적 인간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보는 순서에 따라 결과물은 다시 나눠지게 될 것입니다.
마치며
누구나 어렸을 때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모래는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져내리기도 합니다. 마지막 한 알이 힘들게 쌓은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지요. 임계점을 넘어선 것입니다. 주식시장, 업종 혹은 개별 종목의 주가가 상승하고 하락하는 것을 모래성에 비유하는 시골의사 박경철 작가의 통찰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주가 등락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이 또한 한 가지 관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래성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모래알을 이루는 개별 투자집단에 대한 설명과 스마트머니가 수익을 실현하는 단계, 그리고 불나방이 마지막으로 뛰어들고 불에 타버리는 과정은 제 자신의 투자 방법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트레이딩도 하고 가치투자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투자를 한다고 해서 모래성을 처음 쌓을 때 들어가는 안목이 아직은 없다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불나방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이를 위해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분위기를 파악할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불나방이 되는 것을 면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게 되었습니다.
https://blueorbit.tistory.com/434
https://blueorbit.tistory.com/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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