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정교하게 지도를 제작해도 실제 지형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와 비교할 때 모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단순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Farnam Street. 통섭과 투자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이 모델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어떤 표현물도 그것이 가리키는 실제 그 자체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1931년 수학자이자 철학자 알프레드 코집스키가 일반 의미론에 관한 논문에서 정식화했다.
아무리 정교한 지도라도 실제 지형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한다.
지도는 현실을 압축하고 단순화하며,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반드시 덜어낸다.
그래서 지도는 필요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하다.
통계학자 조지 박스는 같은 통찰을 더 간결하게 말했다.
모든 모형은 틀렸지만 일부는 유용하다.
모형이 틀렸다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본질이다.
현실을 빠짐없이 담은 모형은 현실 그 자체가 되어 더 이상 모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용적인 질문은 이 모형이 틀렸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틀려야 쓸모가 없어지는 가다.
단순화는 모형의 약점이 아니라 모형이 존재하는 이유다.
지하철 노선도가 좋은 예다.
노선도는 실제 거리와 방향을 일부러 왜곡하지만,
바로 그 왜곡 덕분에 환승과 경로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현실을 그대로 옮긴 지도보다, 목적에 맞게 덜어낸 지도가 더 쓸모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지도가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우리는 표현물을 현실로 착각하고,
지도에 없는 위험을 보지 못한다.
모형은 유한한 변수 위에 세워지지만 현실은 무한한 변수로 움직인다.
좋은 모형이라도 어떤 위험은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위험을 가린다.
모형을 쓰되 그것이 영토가 아님을 늘 기억하는 것이 핵심이다.
투자와 기업 분석에의 함의
투자자가 다루는 거의 모든 것이 지도다.
현금흐름할인모형의 결과값, 자본수익률, 베타, 컨센서스 추정치, 백테스트는 모두 현실을 압축한 지도이지 현실 자체가 아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 지도들이 정밀한 숫자로 나올 때다.
정밀함은 정확함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는 입력한 가정만큼만 옳다.
소수점 아래까지 떨어지는 결괏값은 정확해 보이는 착시를 주지만,
그 정밀함은 계산의 정밀함일 뿐 현실의 정확함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밸류앳리스크(VAR)다.
금융기관은 이 모형으로 최대 예상 손실을 깔끔한 하나의 숫자로 제시했고,
그 정밀함은 위험이 통제되고 있다는 착각을 주었다.
그러나 모형의 유한한 변수는 꼬리 위험을 담지 못했고,
2008년의 현실은 지도에 없던 손실을 드러냈다.
지도를 영토로 착각한 대가였다.
같은 위기에서 신용등급도 또 하나의 잘못된 지도였다.
최고 등급을 받은 모기지 증권들이 실제로는 부실 위험을 잔뜩 안고 있었지만,
많은 투자자는 그 등급이라는 지도를 영토로 믿고 내부 검토를 생략했다.
등급은 현실의 한 단면을 압축한 표현일 뿐, 자산 자체의 진실이 아니었다.
같은 논리가 기업 분석 전반에 적용된다.
재무제표는 사업 자체가 아니라 회계 관행과 추정과 선택으로 그린 사업의 지도다.
같은 회사도 회계 정책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고,
일회성 항목이나 자본화 여부 같은 선택이 지도의 윤곽을 바꾼다.
자본이익률과 마진은 유용한 지도지만,
고객 충성도의 방향이나 경영진의 자질, 조직 문화 같은 것은 그 지도에 잘 담기지 않는다.
베타가 위험의 지도로 쓰이지만,
워런 버핏이 지적했듯 변동성과 영구적 자본 손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현금흐름할인모형 역시 사업의 미래를 그린 지도일 뿐이어서,
그 결과값을 진실로 받드는 순간 가정의 작은 오차가 확신으로 둔갑한다.
모형의 출력은 진실이 아니라 근사치로 다뤄야 한다.
모델의 한계와 오용
이 모델의 가장 흔한 오용은 역설적이다.
강력한 모형일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잘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까지 밀어붙인다.
한 분야에서 잘 작동한 지도를 전혀 다른 지형에 그대로 가져다 대고, 그 경계를 가늠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다.
모형이 강력할수록 그 한계를 잊기 쉽다는 것이 함정이다.
예컨대 안정적인 소비재 기업에서 잘 통하던 밸류에이션의 잣대를,
경기 민감 산업이나 사업 구조가 전혀 다른 기업에 그대로 들이대면 결과는 크게 빗나간다.
한 지형에서 정확했던 지도가 다른 지형에서도 정확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두 번째 함정은 더 깊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라는 말 자체도 하나의 지도다.
이 원칙을 극단으로 밀면 모든 모형이 틀렸으니 분석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박스의 후반부가 그 함정을 막아준다.
모형은 틀렸지만 일부는 유용하다.
교훈은 지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쓰되 가볍게 쥐고 그 경계를 알라는 것이다.
분석을 그만두는 핑계로 이 모델을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흔한 오용이다.
불완전한 지도라도 없는 것보다는 거의 언제나 낫다.
세 번째로, 지도는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한때 정확했던 모형도 영토가 바뀌면 어긋난다.
해자가 침식되고 산업이 재편되면,
과거의 구조를 그린 지도는 현재를 잘못 안내한다.
그래서 모형은 정기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델은 사실상 격자 전체에 붙는 단서이기도 하다.
모든 모형 또한 결국 지도이며,
영토가 아님을 기억할 때에만 유용하다.
체크리스트와 연결
이 모델을 절차로 만들면,
어떤 모형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전에 던지는 질문이 된다.
첫째, 이 지도는 무엇을 덜어냈는가.
모형의 출력 옆에 그 모형이 담지 못한 것을 함께 적는다.
둘째, 이 숫자를 진실이 아니라 가정에 딸린 근사치로 다루고 있는가.
정밀한 출력일수록 단일 값이 아니라 범위로 바꿔 본다.
셋째, 이 지도는 아직 현재의 영토를 그리고 있는가,
아니면 바뀐 지형을 옛 지도로 보고 있는가.
넷째, 내가 잘 아는 모형을 지금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억지로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형의 결과는 의사결정의 출발점으로 삼되 최종 판정으로 삼지 않는다.
가능하면 숫자를 실제 사업의 현장 사실과 대조하고,
지도와 영토가 어긋나는 지점이 보이면 지도가 아니라 영토를 믿는다.
모형이 아무리 정교해도,
마지막에 책임지는 것은 모형이 아니라 그 모형을 해석한 사람이다.
이 모델은 격자 전체를 떠받치는 겸손의 조항이다.
능력범위 안에서는 내 지도가 영토에 가깝지만,
경계에 다가설수록 지도와 지형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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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모든 논리를 시험하는 최종 반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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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룬 모든 모형은 유용한 지도들이지만,
어느 것도 영토 그 자체는 아니다.
격자가 강력해지는 것은 지도가 많아서가 아니라,
각 지도의 경계를 알고 서로의 사각지대를 메워줄 때다.
투자 판단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며,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언급한 사례는 개념 설명을 위한 것일 뿐 투자 추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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