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순열과 조합을 통해 우리는 세상사의 실용적인 확률,
이를테면 일이나 사물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생각할지와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경우의 수를 센다는 것
순열과 조합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세는 수학이다.
순열은 순서가 중요한 배열의 수이고,
조합은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선택의 수다.
네 자리 자물쇠의 비밀번호는 순서가 중요하므로 순열의 문제이고,
다섯 명 중 세 명으로 위원회를 꾸리는 것은 순서가 무관하므로 조합의 문제다.
같은 재료라도 순서를 따지느냐 따지지 않느냐에 따라 가능성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단순한 셈법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경우의 수가 직관보다 훨씬 빠르게 커진다는 것이다.
항목이 하나둘 늘어날 때 가능성의 공간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폭발한다.
고작 열 가지 요소를 한 줄로 세우는 방법만 해도 360만 가지가 넘는다.
카드 한 벌 52장을 섞는 방법의 수는 우주의 원자 수보다도 많아,
잘 섞은 카드의 순서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배열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직관은 이 곱셈적 팽창을 거의 따라잡지 못해,
우리는 가능성의 공간을 늘 실제보다 작게 짐작한다.
순열과 조합이 실용적인 이유는 이것이 확률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확률은 결국 원하는 경우의 수를 전체 경우의 수로 나눈 값이므로,
경우의 수를 셀 줄 알아야 확률을 가늠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세상사의 가능성 공간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이해하면 미래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미래는 하나로 정해진 길이 아니라 수없이 갈라지는 나무이며,
그 가지의 수는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늘 많다.
이 모델은 수학의 조합론에서 나와, 세상을 확률과 가능성의 언어로 읽게 해 준다.
투자와 기업 분석에의 함의
투자에서 순열과 조합의 첫 번째 함의는 미래를 단일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분지 되는 나무로 보라는 것이다.
한 기업과 그것을 둘러싼 경제가 펼쳐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조합적으로 방대하기 때문에,
먼 미래를 하나의 값으로 정확히 예측하려는 시도는 거의 헛되다.
그래서 확률론적 사고가 요구한 대로 점이 아니라 범위로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함의는 순열과 조합의 차이에서 나온다.
어떤 투자 논리가 성립하려면 여러 사건이 특정한 순서로 일어나야 한다면,
그것은 순열의 문제다.
순서가 중요한 만큼 성립할 경우의 수는 적고,
따라서 깨지기 쉽다.
반대로 어떤 순서로든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성립하는 논리는 조합의 문제여서,
성립할 경우의 수가 많고 훨씬 견고하다.
그래서 좋은 투자는 흔히 이기는 길이 여러 갈래인 사업이다.
신제품이 성공하거나, 기존 사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비용이 개선되거나, 신시장이 열리거나, 그중 무엇이 일어나도 가치가 커지는 기업은 하나의 시나리오에 운명을 걸지 않는다.
정해진 각본대로 A 다음 B 다음 C가 순서대로 일어나야만 하는 논리는,
같은 요소를 가졌더라도 훨씬 위태롭다.
예를 들어 강한 브랜드를 가진 소비재 기업은 가격 인상, 판매량 증가, 신규 지역 진출, 인접 제품군 확장 가운데 무엇이 실현되어도 가치가 늘어난다.
반면 단 하나의 신약 승인에 모든 것이 달린 기업이나,
자산 매각과 부채 상환과 사업 재편이 정확한 순서로 맞물려야만 살아나는 턴어라운드는,
필요한 사건이 많고 순서까지 요구되어 성공의 경우의 수가 극히 적다.
같은 기댓값이라도 이기는 경로의 수가 많은 쪽이 훨씬 안전한 베팅이다.
세 번째 함의는 포트폴리오에 있다.
포트폴리오의 결과는 기업 각각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투자한 기업들이 조합되어 나오는 결과이며,
그 조합은 상관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개별 기업을 따로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들이 함께 만들어낼 경우의 수를 함께 보아야 한다.
같은 위험에 동시에 노출된 기업들을 여럿 담으면,
투자하는 기업 수만 늘었을 뿐 사실상 하나의 베팅을 키운 것과 같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들을 조합할 때에만,
한 가지가 어긋나도 전체가 함께 무너지지 않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모델의 한계와 오용
순열과 조합의 가장 흔한 오용은 경우의 수를 곧바로 확률로 착각하는 것이다.
경우의 수를 센다는 것은 모든 경우가 똑같이 일어날 법하다고 가정할 때에만 확률로 직결된다.
그러나 현실의 결과들은 균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가지는 굵고 어떤 가지는 가늘다.
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과 그 경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며,
이 둘을 뭉뚱그리면 셈은 정확한데 결론은 엉뚱해진다.
두 번째 한계는 가능성의 공간을 다 셀 수 있다는 착각이다.
현실의 시스템에는 내가 나무에 그리지 못한 가지가 늘 존재한다.
두꺼운 꼬리의 세계에서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가지가 가장 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경우의 수를 다 헤아렸다고 믿는 순간,
그 정밀한 셈은 오히려 거짓 확신을 준다.
내가 그린 나무는 영토가 아니라 지도일 뿐이다.
세 번째로, 적은 가능성에 정밀한 숫자를 붙이는 것은 메타확률의 함정으로 이어진다.
체크리스트와 연결
순열과 조합을 절차로 만들면 논리를 점검하는 질문이 된다.
첫째, 내 투자 논리는 특정한 순서를 요구하는 순열의 문제인가,
아니면 순서와 무관한 조건들의 조합인가.
순서에 의존할수록,
그리고 충족되어야 할 사건이 많을수록 그 논리를 의심한다.
둘째, 이 투자는 이기는 길이 여러 갈래인가,
아니면 하나의 각본에 운명을 거는가.
셋째, 나는 미래를 하나의 길로 보고 있는가,
분지 되는 나무로 보고 있는가.
점이 아니라 범위로 추정한다.
넷째,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혼동하고 있지 않은가.
경우의 수에 확률의 무게를 입힌다.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셈은 정확해도 판단은 빗나간다.
여러 갈래로 이길 수 있는 사업을 선호하고,
특정 순서에 의존하는 취약한 논리는 비중을 낮춘다.
그리고 내가 그린 나무에 없는 가지가 늘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어떤 가지로 가도 파산하지 않도록 비중을 제한한다.
가능성의 공간이 내 상상보다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모델이 주는 가장 실용적인 겸손이다.
이 모델은 격자의 다른 모델과 곧바로 이어진다.
경우의 수를 세는 일은 확률론적 사고의 토대이고,
특정 순서를 요구하는 논리가 취약하다는 점은 가정이 적을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과 통한다.
분지 되는 나무라는 관점은 2차 효과가 그리는 연쇄와 같은 그림이며,
다 셀 수 없는 가지가 있다는 한계는 모형은 불완전하다는 단서,
그리고 두꺼운 꼬리와 맞닿는다.
어떤 가지로 가도 살아남도록 비중을 제한하는 것은 영구 손실을 피하려는 배제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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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열과 조합은 결국,
우리가 마주한 세상이 단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묶음이라는 사실을 숫자로 일깨워 주는 모델이다.
투자 판단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며,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언급한 개념과 사례는 설명을 위한 것일 뿐 투자 추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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