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대학교 개럿 하딘은 "과학 하는 마음은 닫혀 있지 않다.
다만 양심적인 불침번이 잘 지키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입증의 부담은 반박하는 쪽에 있다는 뜻이다.
기회비용 및 시간과 노력의 제약을 감안하면 기본 상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열역학 법칙과 자연선택의 법칙, 보상에 따른 편향 등이 예라고 할 수 있다.
- Farnam Street. 통섭과 투자
기본값을 정하고 입증의 부담을 지운다
기본 상태는, 모든 것을 매번 처음부터 검증할 수 없으므로 가장 견고하게 입증된 원리들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뒤집으려는 쪽에 입증의 부담을 지우는 사고방식이다.
기회비용과 시간과 노력의 제약을 생각하면 이런 기본값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모든 명제를 매번 무한히 의심한다면 우리는 어떤 결정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출발점을 정해 두고,
거기서부터 사고를 시작한다.
개럿 하딘은 과학 하는 마음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불침번이 잘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과 아무 주장이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기본값을 흔들려면 충분한 증거를 들고 와야 하며,
입증의 부담은 기본값을 받아들이는 쪽이 아니라 그것을 반박하는 쪽에 있다.
이것은 마음을 닫는 태도가 아니라,
검증의 자원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태도다.
무엇이든 의심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동시에 의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본값으로 삼을 만한 것은 여러 학문에서 가장 견고하게 검증된 원리들이다.
물리학의 열역학 법칙, 생물학의 자연선택, 심리학과 경제학의 보상에 따른 편향이 그런 예다.
이 원리들은 워낙 단단하게 입증되어 있어,
그것을 거스르는 주장을 만나면 원리가 아니라 주장 쪽을 먼저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영구 기관을 발명했다는 주장에 열역학을 의심하기보다 발명을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델은 인식론의 입증 책임 개념과,
여러 분야에서 가장 견고하게 검증된 법칙을 기본값으로 채택하는 태도가 맞물린 자리에 있다.
투자와 기업 분석에의 함의
투자에서 기본 상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가치평가의 출발점이다.
시장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효율적이라는 것을 기본값으로 둔다면,
가격이 곧 대체로 옳다는 것이 기본 상태가 되고,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입증할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넘어온다.
내가 옳고 시장이 틀렸다고 그냥 가정할 수는 없으며,
펀더멘털로 그 괴리를 증명해야 한다.
스티븐 펜먼이 회계를 통한 가치평가에서 강조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시장 가격을 펀더멘털로 도전하는 것을 분석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펜먼의 또 다른 원칙은 아는 것과 추측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올해 매출이 1억 5천만 달러였다는 사실과 3년 뒤 매출이 2억 5천만 달러가 되리라는 전망은 전혀 다른 종류의 정보다.
전자는 아는 것이고 후자는 추측이다.
그는 아는 것, 곧 신뢰할 수 있는 회계 정보를 추측으로 오염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를 기본 상태의 언어로 옮기면,
회계가 알려주는 현재의 사실은 기본값이고,
미래의 성장은 입증의 부담을 지는 쪽이다.
성장은 당연한 전제가 아니라 증명되어야 할 주장이며,
그래서 성장에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높은 성장 서사로 비싸게 거래되던 기업이 그 성장을 끝내 입증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시장이 성장을 기본값으로 가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기본 상태의 태도는 그 가정을 거꾸로 세운다.
현재의 사실을 기본값으로 두고,
추가로 지불하는 모든 프리미엄에 대해 그만한 성장이 정말 실현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같은 논리가 다른 곳에도 적용된다.
경영진의 행동이나 매도 측 리서치를 평가할 때,
인센티브가 행동을 형성한다는 것을 기본값으로 두면,
사심 없는 행동이라는 주장 쪽이 입증의 부담을 진다.
싸 보이는 주가를 만났을 때도 기본값은 가격이 대체로 옳다는 것이며,
그 기본값을 뒤집을 구체적 펀더멘털 증거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저평가라고 판단한다.
모델의 한계와 오용
기본 상태의 첫 번째 위험은 기본값이 교조로 굳는 것이다.
기본값은 입증의 부담이 걸린 출발점이지,
의심할 수 없는 진리가 아니다.
만약 그 부담을 사실상 무한대로 설정하면 어떤 증거가 와도 갱신이 일어나지 않고,
기본값은 검증되지 않은 채 박제된 선입견이 된다.
좋은 기본값은 끝까지 반증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 오용은 기본값을 잘못 고르는 것이다.
이 모델의 힘은 전적으로 기본값이 열역학 수준으로 견고하다는 데서 나온다.
한낱 관행이나 다수의 통념을 기본값으로 둔갑시키면,
입증 책임이라는 장치는 오히려 편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유용한 기본값이지만 철칙은 아니며,
그것을 절대 명제로 떠받들면 벤저민 그레이엄이 경계한 무기력한 추종으로 흐른다.
세 번째로, 입증의 부담을 한쪽에 지우는 장치 자체가 결론을 보호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결론을 기본값으로 선언한 뒤 반대편에만 입증을 요구하면,
어떤 주장도 부당하게 난공불락이 된다.
그래서 이 장치는 진짜로 견고한 기본값에만,
그리고 양방향으로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체크리스트와 연결
기본 상태를 절차로 만들면 분석 전에 던지는 질문이 된다.
첫째, 나는 지금 무엇을 기본값으로 두고 있으며,
상대편에 어떤 입증의 부담을 지우고 있는가.
가격은 대체로 옳다, 성장은 증명되어야 한다 인센티브가 행동을 만든다 같은 것을 명시한다.
둘째, 내가 기본값이라 부르는 것이 정말로 견고한 원리인가,
아니면 관행이나 통념을 기본값으로 포장한 것인가.
후자라면 그것은 기본값이 아니라 검증해야 할 가설이다.
셋째, 이 기본값은 여전히 반증 가능한가.
그것을 뒤집을 증거가 무엇인지 미리 적어 둔다.
넷째, 나는 입증의 부담을 한쪽에만 유리하게 지우고 있지 않은가.
가치평가는 아는 것과 추측을 분리해,
회계가 알려주는 사실을 기본값으로 두고 성장과 시장 오류 주장에는 펀더멘털의 입증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기본값도 충분한 증거 앞에서는 갱신될 수 있도록 열어 둔다.
기본값은 사고를 멈추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한정된 검증의 노력을 가장 중요한 곳에 집중하기 위한 장치다.
이 모델은 격자의 다른 모델과 곧바로 이어진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기본값은 미스터 마켓과 확률론적 사고에서 말한,
가격이 공정할 사전 확률을 기본으로 두고 내 견해의 우위를 입증하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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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값을 반증 가능하게 유지하는 일은 확증 편향과 반증의 습관과 맞물리고,
어떤 원리를 신뢰할 기본값으로 삼을 수 있는지는 결국 내 능력범위 안쪽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고 견고한 원리를 기본값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오컴의 면도날과도 통한다.
기본 상태는 격자 전체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관한 규칙이다.
어떤 모델을 기본값으로 믿고,
어떤 주장에 입증을 요구할지를 정함으로써,
한정된 사고의 자원을 가장 중요한 판단에 쓰게 해 준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대개 맞다.
따라서 투자자가 똑똑하다고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효율적이지는 않다.
완벽하게 효율적인 것과 대체로 효율적인 것,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가 범상치 않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우리 같은 이들에게 제공한다.
굉장한 수익률을 얻기에는 시장이 이미 충분히 효율적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소수의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상위 3, 4퍼센트에 해당하는 투자자는 제대로 해낸다.
- 찰리 멍거. 2009년 키플링어
투자 판단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며,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언급한 개념과 사례는 설명을 위한 것일 뿐 투자 추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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