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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격자모형

15. 확률과정_경로는 못 맞혀도 분포는 다룬다

by Blueorbit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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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변수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확률 과정을 통해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매일의 주가를 맞힐 수는 없지만 장기간의 주가 분포를 통해 확률을 추산할 수는 있다.
주식시장이 하루에 10% 등락할 가능성보다 1% 등락할 가능성이 큰 것은 분명하다.
- Farnam Street. 통섭과 투자

 

개별 경로 대신 분포를 읽는다

확률과정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무작위 변수들의 모임으로,

개별 경로 하나하나는 예측할 수 없어도 그 전체의 분포와 규칙성은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사고 도구다.

이 모델은 수학, 그중에서도 확률론에서 왔다.

내일의 주가는 맞힐 수 없지만,

충분히 긴 기간의 분포를 보면 확률을 추산할 수 있다.

주식시장이 하루에 10퍼센트 출렁일 가능성보다 1퍼센트 움직일 가능성이 훨씬 큰 것은 분명하며,

이런 규칙성이야말로 확률과정이 붙드는 대상이다.

 

확률과정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매 시점의 변화가 앞과 무관하게 더해지는 무작위 행보, 미래가 과거 전체가 아니라 오직 현재 상태에만 달린 마르코프 과정, 무작위한 사건이 시간에 따라 흩어져 일어나는 푸아송 과정이 대표적이다.

 

금융에 이를 처음 들여온 사람은 프랑스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다.

그는 1900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파리 증권거래소의 주가 움직임을 무작위 행보로 모형화하고,

그 움직임을 술 취한 사람의 발걸음에 빗댔다.

지도교수가 푸앵카레였던 이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분석과 효율적 시장 가설보다 앞선 것이었으나,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뒷날 금융경제학의 초석으로 재평가됐다.

 

당신의 레퍼토리에 초등학교에서 배운 확률이 없다면,
당신은 치열한 달리기 경쟁에서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서 절뚝거리며 남의 뒤만 쫓는 사람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 찰리 멍거. 1995년 남캘리포니아 비즈니스 스쿨 강연

 

핵심은 예측의 단위를 바꾼다는 점이다.

확률과정은 다음 한 걸음을 맞히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걸음이 그려 낼 분포의 모양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무엇이 흔하고 무엇이 드문지를 가늠하게 한다.

경로는 무작위여도 분포는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이 모델의 약속이다.

날씨를 떠올리면 쉽다.

한 달 뒤 특정 날의 기온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그 계절의 기온 분포는 제법 또렷하게 말할 수 있다.

시스템 전체를 분포로 파악하는 능력이 개별 사건의 예측 불가능성을 보완한다.

 


투자와 기업 분석에의 함의

무작위 행보 가설을 투자에 옮기면,

단기 주가는 과거의 자취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버턴 맬킬이 1973년 책에서 대중화한 이 생각은,

지난 가격의 모양에서 다음 가격을 읽어 내려는 기술적 분석의 토대를 흔든다.

가격의 경로 자체에는 짜낼 신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의 진짜 쓸모는 다른 데 있다.

질 높은 복리 기업에 오래 집중하는 관점에서 보면,

확률과정은 미래를 하나의 점이 아니라 분포로 다루라고 가르친다.

어느 한 경로를 단정하는 대신,

사업이 만들어 낼 결과의 범위를 그리고 특히 그 분포의 나쁜 꼬리를 살핀다.

안전마진은 바로 그 나쁜 꼬리에서도 살아남도록 두는 여유이며,

비중을 제한하는 까닭은 어떤 경로가 펼쳐지더라도 영구적 손실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미래를 확률과 범위로 다루라는 원칙이 이 모델 위에서 구체적인 절차가 된다.

하나의 목표 주가를 못 박는 대신,

사업이 잘 풀릴 경우와 평범할 경우와 어긋날 경우의 결과를 각각 그려 두고 그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보는 것이다.

 

또한 경쟁의 침식이나 기술 변화 같은 충격은 정해진 날짜에 오지 않고 무작위한 시점에 흩어져 닥치므로,

푸아송 과정처럼 드물지만 언젠가는 일어나는 사건으로 미리 셈해 두어야 한다.

한 번도 닥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니다.

 

마르코프 과정의 발상도 실전에 닿는다.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상태에만 달려 있다면,

시장은 내가 얼마에 샀는지를 기억하지 않는다.

매수 가격이라는 과거의 한 점은 앞으로의 분포를 바꾸지 못하므로,

본전 생각에 매여 손실을 키우는 일은 확률과정의 논리와 어긋난다.

중요한 것은 지나온 경로가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앞으로 펼쳐질 분포다.

 

이 발상은 들뜬 시장이나 공포에 질린 시장을 마주할 때도 똑같이 작동한다.

가격이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든,

따져야 할 것은 현재의 가치와 그로부터 그려지는 미래의 범위뿐이다.

 


모델의 한계와 오용

첫 번째 위험은 잘못된 과정을 가정하는 것이다.

시장을 꼬리가 얇은 점잖은 무작위 행보로 모형화하면,

큰 폭의 급변이 실제보다 훨씬 드물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두꺼운 꼬리를 가져,

정규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극단적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매끈한 모형을 지나치게 믿다가 그 꼬리에 무너진 사례는 금융사에 차고 넘친다.

모형이 정교할수록 그 정교함이 오히려 방심을 부른다.

모형이 그리는 분포의 모양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두 번째 오용은 분포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잔잔한 시절의 자료로 추정한 확률은 국면이 바뀌면 길잡이가 아니라 함정이 된다.

과거의 분포가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되리라는 가정은,

그 자체로 검증해야 할 또 하나의 주장이다.

오래 이어진 저금리나 잔잔한 변동성은 영원한 배경이 아니라 한 국면일 뿐이며,

그 위에서 추정한 위험은 국면이 바뀌는 순간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크게 빗나간다.

 

문제는 역사 전반이 아니라 최근의 역사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한 분야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결국에는 일어나는 법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도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시계열을 넓게 확장하면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시야를 넓힐수록 더 훌륭한 교훈을 얻는다.
우연한 역사적 사실에만 매달리는 순진한 실증주의에서 벗어나라고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 '행운에 속지 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세 번째로, 이 모델은 홀로 쓰일 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확률과정은 불확실성의 모양을 그려 줄 뿐,

특정 기업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잡음으로 치부하면,

정작 알 수 있는 펀더멘털과 경쟁우위를 놓친다.

분포는 영토가 아니라 지도이며,

그 지도가 가리키는 사업의 본질은 능력범위 안에서 따로 판단해야 한다.

 


체크리스트와 연결

확률과정을 절차로 만들면 분석 전에 던지는 질문이 된다.

 

첫째, 나는 지금 하나의 경로를 맞히려 하는가,

아니면 결과의 분포를 그리고 있는가.

 

둘째, 내가 가정한 분포는 두꺼운 꼬리,

곧 드물지만 치명적인 급변을 허용하고 있는가.

 

셋째, 이 분포는 앞으로도 유지될 만한가,

아니면 국면이 바뀔 여지가 있는가.

 

넷째, 나는 나쁜 꼬리에서도 영구적 손실을 면하도록 비중을 충분히 보수적으로 제한해 두었는가.

 

이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려면, 보유 기업의 미래를 하나의 전망치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범위로 적고,

그중 가장 나쁜 꼬리를 견딜 수 있는지를 점검한다.

단기 주가의 경로는 잡음으로 보아 가치 판단에서 덜어 내고,

어떤 순서로 사건이 닥치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비중을 설계한다.

확률과정을 제대로 쓰는 길은 다음 한 걸음을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음을 견딜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

예측의 정확도가 아니라 어떤 분포에서도 살아남는 견고함이 목표가 된다.

 

이 모델은 격자의 다른 모델과 곧장 이어진다.

무작위성에서 본 우연을, 확률과정은 분포라는 형태로 길들여 다룰 수 있게 만든다.

 

2026.06.22 - [정신적 격자모형] - 14. 무작위성_우연을 실력으로, 잡음을 신호로 착각하지 않기

 

14. 무작위성_우연을 실력으로, 잡음을 신호로 착각하지 않기

비록 인간의 뇌가 이해하느라 애를 먹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무작위적이며 비연속적이고 비순서적인 일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무작위성에 '속아서', 우연히 일어난 일과 우리의 통제 밖의 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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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확률과 범위로 다루라는 점에서 확률론적 사고방식과 한 몸이고,

특정 순서가 맞아떨어져야만 성립하는 취약함과 어떤 순서에도 견디는 견고함을 가르는 일은 순열과 조합에서 본 분별과 같다.

 

2026.06.16 - [정신적 격자모형] - 12. 순열과 조합_가능성의 공간이 얼마나 큰지를 센다

 

12. 순열과 조합_가능성의 공간이 얼마나 큰지를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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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과정은 불확실성의 모양을 그려 주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믿어도 되는지는 격자 전체가 함께 답한다.


투자 판단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며,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언급한 개념과 사례는 설명을 위한 것일 뿐 투자 추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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