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보다 회피를 고려함으로써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수가 종종 있다.
배제의 법칙은 인생사 전반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죽을 곳이 어딘지를 알려주면 그곳만은 절대로 가지 않겠소."
- Farnam Street, 통섭과 투자
거꾸로 생각한다는 것
배제의 법칙은 문제를 정면에서 풀려하기 전에 방향을 뒤집어,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사고방식이다.
원래 투자 용어가 아니라 19세기 독일 수학자 칼 구스타프 야코비의 작업 방식에서 나온, 수학에서 건너온 도구다.
그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거꾸로, 항상 거꾸로(man muss immer umkehren)"라는 원칙을 따랐다.
답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 대신 문제의 반대편에서 출발해 모순에 도달하는 길을 찾았고,
정면으로는 풀리지 않던 문제가 그렇게 하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발상을 투자와 인생 전반으로 옮겨온 사람이 찰리 멍거다.
멍거는 성공하는 법을 묻기 전에 실패하는 법을 먼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잃을까를 나열한 뒤, 그 경로들을 하나씩 피하는 방식이다.
카슨은 X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할 때 반대 방향에서 접근했습니다.
즉, X가 아닌 것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죠.
위대한 대수학자 야코비도 카슨과 같은 접근법을 썼습니다.
그는 또한 '항상 뒤집어라."라는 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야코비는 많은 어려운 문제는 거꾸로 푸는 게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가난한 찰리의 연감
자신이 죽을 곳을 미리 알려주면 그곳만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말이 이 법칙의 핵심을 압축한다.
목적지를 완벽하게 그리는 일보다,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을 먼저 표시하는 편이 치명적 실수를 줄이는 데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멍거가 아주 똑똑해지려 애쓰기보다 꾸준히 멍청하지 않으려 노력해서 얻은 장기적 이점을 강조한 것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투자와 기업 분석에의 함의
배제의 법칙이 투자에서 특히 강력한 이유는 손실과 수익이 대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50퍼센트를 잃으면 본전 회복에 100퍼센트가 필요하고, 90퍼센트를 잃으면 열 배가 필요하다.
영구적 자본 손실은 그 해 성과를 깎는 데 그치지 않고 그때까지 쌓은 복리의 사슬 자체를 끊는다.
장기 복리 투자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평균 수익률이 조금 낮은 일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한 번 겪는 일이다.
게다가 무언가를 더하는 결정보다 피하는 결정이 새로운 위험을 만들 가능성이 낮다.
적극적 개입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기 쉽지만,
명백한 함정을 피하는 결정은 그 자체로 큰 해를 끼치기 어렵다.
실제 기업 분석에서 이 법칙은 "이 회사가 향후 10년 안에 영구적으로 자본을 잃는다면 그 경로는 무엇일까"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일로 나타난다.
전형적인 경로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사업 모델의 구조적 대체다.
코닥은 필름 수익성에 안주하다 디지털 전환에 무너졌고,
노키아는 스마트폰이라는 패러다임 변화 앞에서 자리를 잃었으며,
블록버스터는 비디오 대여라는 형태 자체가 스트리밍으로 대체되며 사라졌다.
둘째는 재무적 취약성이다.
부채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은 평상시엔 높은 수익률을 보이지만 신용이 경색되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진다.
약가 인상과 부채 기반 인수합병으로 외형을 키운 밸리언트(Valeant)가 그 전제가 흔들리자 급격히 붕괴한 것이 그런 예다.
셋째는 회계의 신뢰성이다.
독일 와이어카드는 장부상 거액의 현금이 실제로는 없었다.
"이 회사가 분식을 한다면 재무제표 어디에서 흔적이 보일까"라고 거꾸로 물으면
이익과 현금흐름의 괴리, 설명되지 않는 자산, 잦은 회계 변경 같은 신호에 더 민감해진다.
워런 버핏의 첫 번째 규칙이 돈을 잃지 마라이고,
풀락 프라사드가 위대한 기업을 고르는 일보다 치명적 실수를 거절하는 일을 앞세우는 것도 모두 이 논리 위에 있다.
배제의 법칙은 강력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도구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한계는, 이 법칙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어도 무엇을 사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피는 필터일 뿐 종목을 발굴하는 엔진이 아니다.
함정을 모두 걸러낸 뒤에도 남은 후보 중에서 무엇이 장기적으로 복리가 될지는 별도의 적극적 판단을 요구한다.
오용의 전형은 회피를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모든 위험을 피하려 들면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다.
훌륭한 복리 기업에도 배제 검토가 걸어줄 위험은 늘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준은 위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위험이 영구적이고 회복 불가능한가여야 하는데,
이 구분을 놓치면 일시적 악재 하나에도 좋은 기업을 팔아치우는 과민 반응으로 흐른다.
거꾸로 생각하는 습관이 과도한 비관과 무행동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멍거와 버핏이 회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기회가 분명할 때는 소수 종목에 크게 베팅한다는 사실이 이 균형을 잘 보여준다.
배제는 베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베팅이 치명적 함정 위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한계는 단일 모델을 고립해서 쓸 때 생긴다.
정신적 격자의 힘은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여러 모델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배제의 법칙만으로는 기회의 크기, 가격의 적정성, 경쟁 구조 같은 다른 차원을 보지 못한다.
이 법칙은 의사결정의 핸들 전체가 아니라,
핸들이 절벽으로 꺾이지 않도록 막아주는 가드레일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체크리스트와 연결
배제의 법칙은 머릿속 다짐으로 두면 결정적 순간에 작동하지 않는다.
전진적 사고의 편향이 강하므로 명시적 절차로 설정하고,
품질 분석에 앞서는 탈락 우선 필터로 두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좋은 회사를 고르는 작업보다 먼저,
죽을 회사를 걸러내는 관문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여섯 가지 치명적 경로를 점검한다.
사업 모델이 기술·규제·소비 행태 변화로 구조적으로 대체될 위험이 있는가.
단일 고객·제품·규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가.
신용 경색에서 무너질 만큼 재무 레버리지가 과도한가.
이익과 현금흐름의 괴리나 잦은 회계 변경 같은 신뢰성 의심 신호가 있는가.
무리한 인수합병이나 반복된 자본배분 실패 이력이 있는가.
경영진 인센티브가 단기 주가나 과도한 희석을 통해 주주 이익과 어긋나 있는가.
각 항목에 예와 아니오로 답하는 대신,
"이 항목이 현실화되어 회사가 영구적으로 자본을 잃는다면 그 경로는 무엇인가"를 한두 문장의 서술형으로 적는다.
여섯 항목 중 하나라도 치명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경로가 분명히 그려지면,
품질이나 밸류에이션을 따지기 전에 매수 후보에서 제외한다.
이 관문을 신규 편입의 필수 통과 조건으로 두고,
연간 전체 리뷰 때 보유 종목에도 다시 통과시킨다.
그러면 품질 필터와 밸류에이션 분석은 이미 함정을 걸러낸 종목만 대상으로 삼게 되어,
한정된 분석 시간이 살아남을 회사에 집중된다.
배제의 법칙의 가치는 더 똑똑한 결정이 아니라 덜 어리석은 결정에 있다.
이 법칙은 격자의 다른 모델과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매수 전에 정해두는 반증 조건은 사실상 배제의 신호를 미리 명문화한 것이어서 확증 편향과 반증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영구 손실을 막기 위해 가격에 여유를 두는 안전마진 개념과도 짝을 이룬다.
투자 판단은 전적으로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며,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
언급한 기업은 개념 설명을 위한 사례일 뿐 투자 추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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